김석(金錫) |
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넷째아들이며 어머니는 고려 태조 왕건의 큰딸인 신란공주 일명 낙랑공주이다. 김알지의 28대손으로 고려 태조의 외손, 의성군에 책봉되어 의성김씨의 시조가 되었다. |
김용비(金龍庇) |
아버지는 복야 김공우(金公瑀)로 고려 항몽기에 중서성 참지정사로 번다한 국난에 유공하여 추절보절공신(推節保節功臣) 의성군(義城君)에 책봉되고 금자광록대부(金紫光祿大夫) 태자첨사(太子詹事)를 지냈으며 의성군백성들이 공의 공덕을 기리는 진민사(鎭民祠)를 세워 오늘에 전해졌다. |
김용필(金龍弼) |
아버지는 공우(公瑀)이고 은자광록대부(銀紫光祿大夫), 수사공(守司空)의 벼슬을 지내고 義城君에 봉해졌다. |
김용주(金龍珠) |
아버지는 공우(公瑀)이고 登第하여 4대왕을 섬기면서 여진(女眞)의 난을 평정하여 추충공신(推忠功臣)에 녹훈되고 개성부사를 역임한 후 평장사(平章事)에 가자(加資)되었으며 개성군(開城君)에 봉해졌다. 후손들은 본관을 개성으로 써 왔으나 1865년(고종 2년)에 특령으로 일부가 義城金氏로 환본 되었다. |
김의(金宜) |
감문위 상장군을 지내고 은청광록대부 상서 좌복야로 추봉되었다. |
김굉(金紘) |
아버지는 太子詹事(諱 龍庇)이고 은청광록대부(銀靑光祿大夫) 상서복야(尙書僕射)를 지내고 의성부원군(義城府院君)에 봉해졌다. |
김영(金英) |
아버지는 태자첨사(太子詹事 諱 龍庇)이고 전객시(典客寺)의 판사(判事정3품)겸 집현전 직제학(直提學)을 거쳐 봉익대부(奉翊大夫) 삼중대광(三重大匡 정1품) 문하시랑 찬성사(門下侍郞 贊成事)에 올랐다. |
김성단(金成丹) |
아버지는 門下侍郞( 諱 自然)이고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찬성사(門下贊成事 정2품)를 지냈다. |
김서지(金瑞芝) |
宜의 둘째 아들로 흥안(現 성주) 도호부부사(都護府副使)를 지냈고 경상도 관찰사(觀察使), 조현대부(朝顯大夫) 내영고(內盈庫) 소윤(少尹 종4품)을 지냈다. |
김지예(金之銳) |
英의 맏아들로 문과에 급제해 초계군수(草溪郡守)를 지내고 병부상서(兵部尙書) 밀직부사(密直副使)에 증직 되었다. |
김영렬(金英烈) |
자는 열지(烈之)이며 호는 맹암(孟巖)으로 아버지는 복야 김굉(金紘)이다.
고려 전서로 태조 을해에 등과하여 수군절제사·안무사·수군도지휘사·삼군총제·병조참판·지삼군부사를 거쳐 추충분의익대공신(推忠奮義翊戴功臣)으로 녹훈되고 좌찬성을 지냈다.
사후에 우의정을 증직하여 양소(襄昭)라 시호하고 학림(鶴林)·옥산(玉山)·신천서원(新川書院)에 봉향되었다. |
김춘(金椿) |
아버지는 좌복야 김의(金宜)로 고려때 등과하여 은청광록대부 삼사문하시랑 중서문하평장사를 지냈다. |
김옥(金玉) |
평장사 춘(平章事 椿)의 맏아들로 문과에 급제해 정의대부(正議大夫 정3품) 좌사의(左司議)를 지냈다. |
김연(金衍) |
평장사 춘(平章事 椿)의 넷째아들로 문과에 급제해 군국평장사(軍國平章事)를 거쳐 문하시중(門下侍中 종1품)을 지냈다. |
김경복(金慶復) |
맹암(孟巖 諱 英烈)의 셋째 아들로 문과에 급제해 경연시독관(經筵侍讀官)을 거쳐 자헌대부(資憲大夫 정2품) 개성유수(開城留守)를 지냈다. |
김광부(金光富) |
호는 남파(南坡)이며 아버지는 병부상서 김지예(金之銳)이다.
고려 충혜왕 초 대과에 장원급제하여 대호군·계림윤(鷄林尹)을 거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에 유공하여 거듭 2등공신으로 녹훈되고 나아가서 원의 잔당을 요동에서 물리쳤다.
우왕 5년 왜구의 침입에 합포(合浦)도순무사 겸 합포원수로 출전하여 전사하매 순성보리공신(純誠輔理功臣) 의성군(義城君)으로 책봉되었다. |
김태권(金台權) |
아버지는 소윤 김서지(金瑞芝)이며 문예부 좌사윤으로 공민왕 계묘 흥왕사(興王寺)의 난에 공민왕을 호가하다가 해를 입고 순직하였다. |
김거두(金居斗) |
아버지는 좌사윤 김태권(金台權)이며 고려 때 벼슬길에 올라 문하주서를 거쳐 공조전서를 지내고 경주부윤으로 민몰(泯沒)상태에 있던 『삼국사기』를 중간하여 발문을 남겼다. |
김거익(金居翼) |
호는 퇴암(退庵)이며 아버지는 좌사윤 김태권(金台權)으로 고려 때 출사하여 광정대부 정당문학 겸 성균악정을 지냈다. 조선조에서 우의정에 누징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부여 반월성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다. |
김현주(金玄柱) |
평장사 춘(平章事 諱 椿)의 손자이며 옥(玉)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해 대사간(大司諫 정3품)에 이르렀으며 문예관(文藝館)의 대제학(大提學 종2품)과 광정대부(匡靖大夫 정2품) 찬성사(贊成事)를 지냈다. |
김용초(金用超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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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는 내성재(內省齋)로 아버지는 판서 김수덕(金修德)이다.
고려 충숙왕 기사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부사를 거쳐 조선조 개국원종공신(開國原從功臣)으로 병마절제사를 지냈다. 성품이 질박하고 곧으며 문무를 겸비했다. 문절(文節)의 시호를 받았다. |
김을방(金乙邦) |
호는 둔번(遁煩)으로 아버지는 대제학 김현주(金玄柱)이며 고려때 문과에 급제하여 흥위우위 보승낭장을 지냈다. |
김로(金路) |
호는 석포(石圃)로 아버지는 도순문사 김광부(金光富)이며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농경을 지내고 태조의 잠저고인(潛邸故人)으로 이조판서를 추증받았다. |